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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E

[Fate] se sucer la pomme

메이포플러 2018.12.25 00:10

181225 로빈 후드


* 배경: 현대. 연인.

* 챕스틱 챌린지와 무수한 키스마크 💋


 

 

 

 

 

 

자기야 여기 앉아봐.”

느닷없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단어가 있다. 예를 들면 평소와 다른 호칭부터 시작하여, 얘기 좀 해, 잠깐 나 좀 봐, 여기 앉아봐, 우리 할말이 있지? 그 외에 비슷한, 혹은 전혀 다른 다양한 말들.

로빈은 그 일련의 대사들 중 하나가 연인의 입에서 나오자마자 자신의 하루 일과를 되짚어보았다. 하루만 돌아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약 일주일치의 기억이 빨리감기 하듯 머릿속에서 휘리릭 되감긴다. 그리고 티나지 않는 한숨을 쉬었다. 거리낄 일은 없었다.

게다가 뒤늦게 눈치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 언짢거나 화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방글방글 웃음이 피어있었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화를 내는 타입은 아니니 사서 걱정할만한 일로 부른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마도.

날짜상 슬슬 못 먹겠다 싶어진 그녀의 요플레를 말 없이 버린 것 때문에 부른 게 아니라면.

잠깐만 기다려봐.”

로빈의 손을 잡아끌어 기어이 방바닥에 앉힌 그녀는 퍽 들뜬 기색이었다. 친구를 만난다며 나갔다오더니 즐거운 만남을 성사한 모양이었다. 정오 즈음부터 씻고 갈아입고 다듬고 온갖 부산을 떤 보람이 있는 듯 했다. 부산스러운 정도──준비하는 데에 드는 정성이나 시간이 로빈과의 데이트를 준비할 때와 별반 차이가 없어 조금 미묘한 기분도 들지만…… 그 부분은 로빈이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지 않은가.

그녀가 좋다면 로빈도 좋았다. 민들레 홀씨가 번지듯 웃음이나 기쁨도 번지는 것이었나보다.

뭘 하려는 건데요?”

로빈이 턱을 괴며 물었다. 사실 크게 궁금하지는 않았다. 아니, 궁금하다고 해야할까? 현관문을 들어설 때부터 그녀의 입가에서 사라지지 않는 웃음이 궁금하기는 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미소가 끊이지 않나 하는 의문. 로빈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일이라 굳이 알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잠깐만.”

쇼핑백을 뒤적거리던 그녀가 시선 한번 주지 않고 잘라 말했다. 작은 쇼핑백에 뭐가 그리 많이 들었다고 한참을 뒤적여댔다. 이쯤 되니 로빈도 자세를 고쳐 앉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다녀왔다는 인사──비쥬과 포옹도 없이 손을 닦겠다며 화장실로 직행한 것까진 괜찮았다. 스쳐지나간 그녀에게서 집에서 뿌린 것과는 다른 향수 냄새가 난 것도 괜찮았다. 그래, 괜찮았다. 하지만 손을 닦았으면 못다한 인사는 마저 해야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녀는 물기가 덜 닦인 손으로 로빈을 붙잡을 뿐이었다. 그리곤 방바닥에 앉혔고, 현재의 상황에 도달한다.

그녀의 귀가를 기다리던 로빈에게 남은 게 뭐란 말인가? 겨울의 추위 탓에 아침서리를 빚어 만든 것처럼 서늘해진 그녀의 손?

젠장.

로빈은 그녀의 한손을 살며시 그러쥐었다. 그제서야 그녀가 눈길을 주었다. 그녀는 내내 손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조금 놀라더니, 로빈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다른 한 손을 다시 쇼핑백 안으로 집어넣었다.

젠장!

그는 부글거리는 심정을 애써 다스리며 물었다.

어째 기분이 좋아보이는데요?”

? 그야 좋은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잖아. 오늘 엄청 마음에 드는 향수를 발견해서 말야~ 바로 사버렸지 뭐야. 이것저것 포함해서! 향이 너무 좋지 않아?”

그녀가 샐샐 웃으며 연인의 뺨을 쓰다듬었다. 말마따다 좋아하는 향수나 코롱을 뿌리면 특히 기분이 좋아보이긴 했다. 새로 산 향수가 어지간히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모습을 보건대 앞으로도 자주 뿌릴테니 로빈도 새로운 향기에 금방 익숙해지리라.

로빈은 피부 너머로 느껴지는 맥박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옷에 스며든 체온과 이리저리 섞인 향이 연기처럼 흔들렸다. 로빈은 여전히 차가운 손길에 얼굴을 묻고 그렇습니까요, 하고 웅얼거렸다. 뭐든 좋았다. 그냥 좋았다.

사온 물건들을 전리품처럼 일렬로 늘어놓던 그녀는 마지막 하나를 꺼내들었다. 손가락만한 길이의 꽃잎빛깔 케이스였다. 로빈은 피아노 건반처럼 바닥에 줄지은 알록달록한 화장품 케이스들을 내려다보았다.

립스틱? 립글로즈? 아니 립밤인가?”

그나마 귀에 익은 단어들이었다. 평생 인연 없는 물건이 무엇인지 그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입술에 바른단 것까지는 알아도 세세한 구분은 가지 않았다. 그다지 관심이 없기도 했다. 기껏 안다고 해봤자 어떤 색은 맛이 없고 어떤 색은 먹을만하다 따위였다.

로빈은 개중 하나를 집어들어 괜히 불빛에 비추어봤다. 옅은 꽃분홍색의 반질반질한 표면이 불빛을 반사하며 빛났다. 케이스의 색은 제품의 색이려나, 하고 심드렁하게 생각하는 와중이었다.

무릎에 닿은 감촉에 로빈은 화들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움켜쥐었다. 손아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 것 같기도 했으나 그걸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무릎을 지나 허벅지까지 올라온 손이 서서히 무게를 맡기며 묵직하게 내리눌렀다. 얇은 바지 너머로 아직 차가운 손의 온도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로빈의 다리 위로 슬금슬금 올라오던 그녀는 아예 그의 다리 위에 올라앉고는, 립글로즈인지 립스틱인지 모를 것을 움켜쥔 그의 손을 조물거렸다.

그녀는 손아귀에서 빼낸 화장품의 케이스 뚜껑을 열더니,

우리 재밌는 거 할까?”

라며 웃었다.

로빈은 들불처럼 옮겨붙은 웃음을 옅게 따라그리며 저도 모르게 목울대를 꿀꺽 울렸다. 벌써부터 모든 게 재밌었다.

 

 

 

se sucer la pomme

 

 

 

간단한 설명을 하고 넘어가자.

챕스틱 챌린지라 함은 상대가 바른 립 제품의 가향이 어떤 종류인지 맞추는 게임이다. 맞출 때까지 시도할 수 있으며, 정답을 맞추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옵션이 붙어있기도 하고 아닐 때도 있다. 대체로 하는 사람들 마음대로인 것이다. 목적은 게임의 승패를 가리는 데에 있지 않으니 제법 유도리있는 판정이 적용되는 법이었다.

그렇다고 제품을 봐서는 안 되는 건 물론이고 당연히 만져볼 수도 없다. 향을 맡아보는 것도 아니다.

그럼 어떻게 맞추느냐 하면, 물건은 각자 제 쓰임새가 있지 않은가.

 

1.

붉은 입술이 로빈의 마른 입술 위로 겹쳐졌다. 잠시 닿았다 떨어지는 짧은 접촉이었다. 쪽 하고 경쾌한 소리까지 챙긴 입맞춤이 지나가자 로빈의 입술 위에 희미한 립스틱 자국이 남았다. 그녀는 진한 레드 컬러 립을 보며 치미는 웃음을 꾹꾹 눌러 참았다.

와중에 로빈은 방금 건 너무 짧잖아요. 한번 더 해줘봐요.” 하며 불평불만을 토로했다. 투덜거리는 말투와는 별개로 애써 웃음을 숨기려는 낯이었다. 그녀는 가타부타 말을 얹지 않고 순순히 그의 요청에 따랐다.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매끈매끈한 입술이 피부 위로 미끄러졌다. 립 제품이 약간의 점성을 포함한 탓에 살갗은 평소보다 끈적하게 밀착했고 입맞춤에서는 달콤한 향기가 물씬 피어올랐다. 약간 인위적인 느낌이 나는, 끈적하게 늘어지는 듯한 달큰한 향이었다.

둘은 쪼는 듯한 버드키스를 몇 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다시 거리를 벌렸다.

뭔지 알겠어?”

~ 체리?”

정답!”

그녀는 방글방글 웃는 낯으로 로빈의 볼에 입술을 부볐다. 퍽 선명한 입술자국이 피부 위로 새겨졌다. 로빈은 너털 웃음을 짓더니,

다 맞춘 보상을 이걸로 퉁칠 생각하지 마쇼. 제대로 받아낼 거니까요.”

하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녀는 일단 다 맞추고 얘기하시죠.” 라며 그의 코 끝에 입맞출뿐이었다.

다음 거 바를테니 눈 감고 있으란 그녀의 명령 아닌 명령에 로빈은 착실히 따랐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됐다고 할 때까지 감고있어라는 말이 덧붙여지지 않았으니 괜찮다는 합리화를 하는 건 눈깜짝할 새였다. 이 정도 일에 거리낄 양심은 한참 전부터 없었다. 로빈은 살짝 실눈을 떴다.

그녀의 동그란 뒷머리가 보였다. 어깨 너머로 손바닥만한 크기의 손거울이 보였고, 그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립스틱을 바르는 그녀가 보였다. 집중하는 눈매를 보는 것도 좋지만 립스틱(?)을 바르는 모습도 꽤나 보기 좋았다. 비유하자면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부른 기분. 동시에 괜히 허기가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흠흠.

한참 연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로빈은 그녀가 손거울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잽싸게 눈을 감았다.

 

2.

로빈의 어깨 위로 가벼운 손이 내려앉고, 연이어 입매에도 입술이 스쳤다. 부리를 사귀는 새들처럼 무게 없이 스치는 입술들은 쪼는 소리를 내며 부드러운 입맞춤을 주고받았다. 로빈이 입을 우물거리며 뭔가 말하려는 것 같긴 했으나 그녀는 모르는 척하며 그의 아랫입술을 얕게 핥았다. 로빈은 입을 여는 대신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몸을 단단히 안아오는 팔 힘에 살금 웃으며 고개를 비스듬히 틀었다. 로빈의 흘러내린 머리칼 끝을 더듬자 손 끝에 사그락사그락거리는 감촉이 흘러내렸다. 손가락 위로 설탕가루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속눈썹이 떨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바라보는 시선이 뜨거운 같기도 하고…… 시선?

그녀가 눈꺼풀을 반짝 들어올리자마자 본 것은 코앞에서 빛나는 녹색 눈동자였다. 다짜고짜 시선이 마주친 그녀는 몇 번 눈을 깜빡이곤 떨어지는 꿈에서 깨어난 사람마냥 그의 어깨를 밀어댔다. 머릿속에 물음표와 느낌표가 난무했으나 차분히 정돈되지는 않았다. 반칙을 하는 건가 싶은 의심과 뭘 보는 거냐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파도처럼 울렁였다.

우선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데 로빈이 허리를 단단히 붙잡고 있어 거리를 벌리지도 못했다. 오히려 어깨를 민 것을 시작으로 로빈이 적극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게 아닌가. 그녀의 혀를 살짝 깨물기도 하고, 귓가를 살살 간질이기도 하고, 윗입술을 빨기도 하고……. 그녀는 슬슬 숨도 막히고 당황한 마음에 입막힌 소리(“! 으음~~!~!~!!! 으음~!~!!!”)를 내며 로빈의 어깨를 팍팍 때렸다.

로빈은 어깨를 얻어맞고 나서야 입술을 떼고는,

뭡니까. 나 아직 못 맞췄어요.”

하고 천연덕스럽게 구는 게 아닌가.

! 뜨고 있었잖아!”

아니 뭐 그런 거 가지고. 정답을 훔쳐본 건 아니잖아요?”

날 훔쳐봤잖아!”

그러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없던 걸로 기억하는뎁쇼. 댁도 그런 말 안했죠?”

없지만…… 안했지만…….”

그쵸? 딱히 반칙하지 않았죠? 이래봬도 정직한 남자라니까요, 나는.”

꾹 다물린 그녀의 입술이 비죽 튀어나왔다. 찌푸려진 미간이 억울하지만 뭐라 할 말을 없는 심정을 대변하는 듯 했다.

로빈은 립 컬러가 조금 지워진 입술에 쪽 입맞추곤 흐트러진 머리칼을 손빗으로 빗어주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그녀의 목뒤를 간질이기도 잊지 않았다. 여유로움이 뚝뚝 떨어지는 로빈의 얼굴이란 그야말로 콧노래라도 부를 것 같은 표정이었다.

, 답은 알겠어?”

? ~~ 글쎄요, 뭐려나.”

모르는 척 하지 말고.” 그녀가 다시 로빈의 어깨를 찰싹 때렸다.

알았어요, 알았어. 복숭아죠? 댁이 뿌리는 샤워 코롱 향이랑 비슷하잖수.”

말은 그리 해도 거의 같은 거나 진배없었다. 공기 중에 퍼지는 가볍고 달콤한 향은 가만히 있다가도 뒤돌아보게 만들고 괜히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이었다. 그런 걸 쉽게 잊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제 눈가에 떨어지는 입맞춤을 받으며 정답이라고 웅얼거렸다. 눈꺼풀 위로 떨어지는 몇 번의 온기에 뾰족하게 세워졌던 마음이 슬슬 풀어져, 괜히 로빈의 옷자락을 꽉 움켜잡았다 놓았다. 그새 새겨진 주름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제 마음을 조금이나마 숨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너무 빤히 보여주는 건 불공평하고, 무엇보다 부끄러우니까.

, 다음 꺼 해야죠?”

로빈이 녹색 눈을 맞춰왔기에 그녀는 그의 볼을 콱 깨물었다. 옅은 잇자국과 함께 남은 립 마크는 덤이었다.

 

3.

그녀는 입술에 색을 물들이자마자 로빈의 입술에 달려들었다. 그녀를 받아낸 로빈이 잠시 휘청거릴 정도의 기세였다.

입술이 닿기도 전에 앞선 향기들을 묻어버릴만큼 진한 딸기향이 훅 풍겼다. 로빈은 열기를 품은 달콤한 향은 물론이거니와 그녀가 들이쉴 공기마저도 삼켰다. 마주본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코끝을 스치고 입술을 핥아댔다. 그녀의 팔이 나팔꽃 넝굴처럼 로빈의 목을 휘감았고, 로빈 역시 두 팔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가슴팍이 밀착하자 옷감 너머로 열과 맥박이 스멀스멀 전해졌다.

호흡을 정돈하지 못해 헐떡이던 그녀는 슬쩍 눈을 떠서 로빈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또 눈을 뜨고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볼게 뭐가 있다고 그러는지 영 모를 노릇이었다. 그녀는 제 두손으로 로빈의 눈꺼풀 위를 덮고나서야 마음을 놓고 입맞춤에 집중했다.

입술을 몇 차례 핥은 후에야 침을 삼키며 떨어진 그녀는 답은?” 하고 새침을 떨었다. 로빈은 제 입술을 낼름 핥았다.

딸기맛.”

딸기향이겠죠.”

퉁명스럽게, 그러나 차마 웃음을 감추지 못한 그녀는 로빈의 양볼을 붙잡고 그의 입가에 입맞췄다. 입술모양의 정답표시가 선명하게 남았다.

다음 문제를 위해 입술을 살살 닦는 중이었다. 커튼처럼 살랑거리는 클렌징티슈 끝자락을 가만히 바라보던 로빈은 문득 그녀의 표정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조금 미묘한 표정──놀란 것도, 질린 것도 아닌 표정으로 방금 전까지 입술을 문지른 티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그래요? 무슨 문제라도?”

, 아니…… 일단 닦아내긴 하는데 딱히 닦을 필요가 없는 거 같아서.”

로빈은 그녀가 내민 티슈를 확인했다. 클렌징 티슈가 울긋불긋하게 얼룩져있긴 했으나 물감을 덜어낸 것마냥 심하진 않았다.

아마도 다 뱃속으로 들어갔나보죠.”

로빈은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능글맞게 대꾸했다. 로빈의 가슴팍에 폭 기댄 그녀의 표정이 더욱 미묘해졌다.

이상하다, 내가 처음에 생각한 건 좀 더 귀엽고 가벼운 챕스틱 챌린지였는데…….”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는 법이잖습니까. 인생에서 배운 귀한 조언이라고요.”

지금 상황에 비해 꽤 무거운 조언인 것 같은데요.”

, 그런 사소한 건 신경쓰지 말고 하던 거나 마저 합시다. 이제 슬슬 재밌어지던 참인데.”

거짓말하지 마. 한참 전부터 신나있었잖아.”

그야 당연하죠. 이런 귀여운 짓을 하는데 안 신나고 배기겠습니까요.”

소원으로 뭘 빌지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는 걸. 로빈이 보란 듯이 웃으며 휘파람을 짧게 불었다. 새소리를 닮은 높고 경쾌한 휘파람이었다. 그녀는 로빈을 흘겨봤으나, 로빈은 싱글벙글한 낯으로 뾰족한 눈길을 튕겨냈다.

 

4.

그녀는 로빈의 어깨에 다시 손을 올리긴 했으나 머뭇거리는 눈치였다.

쉬는 시간은 없다고요?”

아니 재촉하지 좀 말아봐!”

내가 너무 잘생긴 탓에 잠시 넋을 놓기라도 했다든가?”

로빈 우리 거울 보고 얘기하자…….”

자기 얼굴에 찍힌 입술 도장이 몇 개인지 알고나 하는 말인지. 게다가 선명하게 찍히지 않은 것들도 있어 입술 도장이라기보단 색색깔의 연지곤지에 가까웠다. 그나마 본판이 잘생겨서 어울리는 것이었다.

키스마크가 몇 개 있든 내가 잘생긴 건 변함없는 사실 아닙니까?”

그렇지, 로빈 잘생겼지.”

못마땅할지라도 사실을 거짓으로 덮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로빈의 양뺨을 붙잡고 살살 어루만졌다. 조물거리기도, 쓰다듬기도, 흘러내린 앞머리를 다시 귀 뒤로 넘겨주기도 했다.

예뻐라.

그녀는 한숨처럼 새어나오는 생각을 수면 아래로 묻었다 . 언제나 그렇듯 말을 삼키곤 그의 눈꺼풀 위에 입맞췄다. 꽃잎같은 연분홍색 입술자국이 희미하게 남았다. 입맞춤의 울긋불긋한 얼굴로 온 얼굴을 물들인 채, 그저 눈만 깜빡이는 로빈을 보고있자니 가슴 안쪽이 간질거렸다. 그의 붉어진 귓바퀴를 매만지던 그녀는 치밀어오르는 웃음을 참지 못할 때처럼 치미는 충동에 몸을 맡겼다. 답싹 끌어안자 로빈의 금빛 머리칼이 그녀의 품에 폭 안겼다.

그녀의 가슴팍에 코를 박은 로빈은 그녀의 목덜미에서 나는 향수 냄새를 맡았다. 평소에 뿌리는 향과, 어딘가에서 묻혀온 낯선 향과, 그녀의 체향이 한데 섞인 달큰한 향……. 로빈은 울컥 올라오는 한숨을 삼키고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 이 양반 또 이러네~”

제법 그럴 듯한 천연덕스러움이었다. 그러나 로빈의 귓가와 목덜미는 입술자국을 남기지 않았는데도 울긋불긋했다. 그녀는 발간 피부를 보고 한번 더 숨죽여 웃었다.

분홍색 입맞춤은 그 색깔을 닮아 날리는 꽃잎같은 것이었다. 숨결처럼 스치는 입맞춤이 관자놀이, 미간, 콧등, 눈꺼풀 위, 뺨을 가리지 않고 쉴새없이 내려앉았다. 키스의 비를 내리는 그녀는 마음이 흠뻑 차오르는 기분에 젖어 만족스러웠으나 로빈은 그녀를 멈추게 하고 입을 맞춰야 할지, 아니면 조금만 더 이 상황을 즐길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은근슬쩍 눈치를 보던 로빈은, 그녀가 그의 입가에 입술을 가까이한 순간 고개를 돌렸다. 완벽한 입맞춤이었다. 그녀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로빈을 잠시 바라보더니, 살짝 웃었다. 둘의 입술이 다시 한번 맞닿았다.

정답은?”

그녀는 이마를 맞댄 채 물었다. 호흡이 느껴지는 간지러운 질문이었다. 로빈은 반쯤 내리뜬 속눈썹을 바라보느라 그녀의 말을 뒤늦게 이해했다.

…… 설탕? 솜사탕?”

.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맞췄네.”

개코라고 떠벌릴 만큼은 아니지만 냄새맡는 건 자신있습죠.”

과장된 코웃음이 곁들여진, 짐짓 젠체하는 태도였다.

훌륭해, 훌륭해.”

네 번째 정답표시는 이마였다. 연분홍색 입술자국이 하나 더 남겨졌다.

 

5.

틴트를 바르기가 무섭게 로빈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로빈을 바라봤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그녀의 양쪽 귀를 손으로 막았다. 입술이 맞닿는 건 지체없이 이루어졌다. 그의 손이 그녀의 귀와 뺨을 거진 다 덮었고, 그녀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연인의 입맞춤을 받아들였다. 아니,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다는 표현은 좀 어폐가 있었다. 맥박이 뛰는 소리, 근육이 긴장하는 소리, 혀가 얽히는 소리, 입술이 스치고 부딪히고 숨을 헐떡이다 들이마시는 소리가 적나라했다. 간혹 로빈이 귓바퀴와 목덜미를 더듬을 때엔 간지러워 허리를 비틀어야만 했다. 소름이 돋아 어깨가, 몸이 오싹오싹 떨렸다.

눈을 질끈 감고 반은 버티듯, 나머지 반은 참아내는 듯한 그녀와는 상반되게, 로빈은 물론두 눈을 뜬 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 무슨 표정을 짓는지, 어떤 반응을 하는지 느긋하게, 그리고 지긋하게. 녹색 시선은 그야말로 샅샅이 핥는 듯한 것이었다.

헐떡이던 그녀는 눈을 살짝 떴다가, 로빈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역시 물론그의 눈가 위로 제 손을 덮었다. 그리고 치켜올렸던 눈꺼풀을 도로 감았다. 붉은 빛이 도는 어둠이 두 사람을 뒤덮었다. 감각이 한 가지 차단되는 건 비이성적인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로빈은 속눈썹이 떨리는 소리를 들었다. 눈가를 덮은 손에서 혈액이 흐르는 소리를 들었고, 제 목덜미에서는 빠르게 뛰는 맥박소리를 들었다. 맞닿은 살갗이 따뜻했고, 스치는 입술이 기분 좋았고, 코끝을 맴도는 달큰한 향이 아직 눈 뜬 채인 다른 감각들을 자극했다.

사과로군.

로빈이 생각했다. 수분을 머금은 듯한 풋풋함이 하늘하늘 흔들리는 향. 지나치게 쉬운 문제였다. 로빈이 이 문제를 맞추지 못할 가능성은 더없이 낮다는 사실을 출제자도, 수험자도 알았다.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 숨결의 교환을 입술을 닫음으로써 거부의사를 표현한 그녀가 숨을 몰아쉬었다.

정답은?”

로빈은 잠시 생각하다가,

잘 모르겠으니 조금만 더 해보죠.”

하고 그녀의 입술을 달게 물었다. 맞닿은 얇은 피부 사이로 체온과 웃음이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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