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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난무] 그대 보름달눈 부엉이

메이포플러 2019.03.03 20:30

190303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


* 사니와 이름 안 나옴. 여사니와

* 미츠타다(→ ←)사니와 양방짝사랑

* 도검 파괴 소재

당신의 입에 키스했어, 요한. 당신의 입에. 그런데 당신 입술에선 쓴맛이 나네.



그들의 사니와審神者에게선 향기로운 내가 난다.

혼마루에 있는 도검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동의하는 사실이었으나 어떤 향내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다. 누군가는 물냄새라고 하고, 누군가는 풀냄새라고 했다. 진한 단내라고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연기처럼 희미한 향이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날마다 뿌리는 향수나 품에 넣은 향낭이 다른가 했다가도 같은 순간 그들의 사니와와 마주친 도검들의 코끝에는 각기 다른 향기가 스쳤다. 주인의 영력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형태로 구체화된 게 아닌가 하는 의견도 나왔으나 확인은 불가능했다.

그들은 몇 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논쟁을 하기도 했으나 결론은 나지 않은 채 유야무야 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들은 각자 납득이 가는 결론을 내리거나, 풀리지 않은 매듭으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물론 움튼 채 시들지 않는 호기심을 여전히 들여다보는 이도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주인의 뒤를 어린 새처럼 쫓거나 어미의 품으로 파고드는 짐승처럼 주인의 사적인 공간까지 밀고 들어가려 하곤 했다. 칼 같이 날카로운, 때때로는 진짜 칼인 그들보다도 날카롭고 예리한 주인은 주인인과 부하──혹은 소유물을 가르는 선을 단칼에 그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선 또한 있었으나 가장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선은 집무실의 문지방 앞이었다.

혼마루의 주인은 멀지 않은 곳에서 나는 발소리를 들었다. 누군가가 또다시 장지문 너머로 말을 걸러 오는 모양이었다. 검토하던 서류와 자료를 마저 뒤적이고 있자 발소리가 문지방 앞에서 멈췄다.

야아, 오늘의 근시近侍는 너구나, 마에다 군.”

미츠타다 씨.”

어스름한 장지문 너머로 작은 그림자가 꾸벅 머리를 숙였다. 종이 한 장 건너의 주인을 인식해 작게 억누른 대화였지만 높은 어린아이와 낮은 성인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게 하는 쪽이 어려웠다.

그들의 주인은 책상에서 시선을 들어 장지문을 바라보았다. 느릿한 숨을 크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자 근시가 자신의 주인을 낭랑한 목소리로 불렀다. 자리를 비울 허락을 구하는 부름이었다. 사니와는 짧게 대꾸했다.

물러나 있어라.”

충성스럽고, 또한 적절한 판단력을 갖춘 소년은 짧게 머리를 숙이고 일어났다. 늘상 사니와의 곁에서 그를 보좌해야하는 근시로서 올바른 행동은 아니었으나 충실한 부하로서는 주인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한층 커다란 보람이자 준수해야 할 의무였다. 더욱이 방문객이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라면.

사니와는 참새보다 가벼운 발걸음이 소리 없이 떠나는 모습에 눈길을 주는 대신, 그리고 찾아온 방문객을 환대하는 대신 다시 책상에 고개를 박았다. 묵직한 만연필의 끄트머리가 종이 위를 유려하게 미끄러진 직후 종이 끄트머리에 붉은 인장이 찍혔다. 미츠타다는 집무실 문지방 앞의 복도에 정좌한 채 그 모습을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종이를 긁는 소리를 내며 서류작업을 해치우던 사니와는, 책상 위로 기울어진 해그림자를 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짧지 않은 시간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엇 하나 입에 넣지 않았기에 목소리가 조금 갈라져 있었다.

마음은 풀렸나?”

무슨 말이니?”

만족할 만큼 날 구경했냐는 뜻이야.”

그런 말투는 좋지 않네. 남들 듣기에 좋지 않아.”

이 자리에 너와 나 말고 누가 있단 말이냐?”

주위를 둘러보는 체를 할 필요도 없었다. 한 혼마루의 주인이라곤 해도 시동이나 시녀가 있진 않으니 근시가 자리를 비운 이상, 자리를 물릴 상대는 없었다. 주인에게 가장 가까운 근시마저 주인의 곁을 떠나 다가오는 이가 없게 막고 있는 현재, 길게 이어진 복도와 장지문을 활짝 열어놓은 집무실은 밀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미츠타다는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주인된 바, 새나 쥐에도 주의를 해야하잖아.”

알고 있겠지만, 이곳에 내 허락 없이는 개미 한 마리도 들어오지 못할 거다.”

미츠타다가 무언가 말을 하려 했으나 그의 주인은 작은 손짓으로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따가워서 죽는 줄 알았다, 미츠타다.”

널 아프게 한 기억은 없는데…….”

모르는 척 말아. 얼굴이 뚫어지게 쳐다본 게 누군데.”

그만큼 끈질기게 군 기억도 없는 걸. 그러면 꼴사납잖아.”

미츠타다는 일관된 태도로 딱 잡아 뗐으나 모르쇠를 하는 동안에 마주치는 눈빛마저도 피부를 찔러대는 듯 한 것이었다. 유심히 관찰하는 듯 한참 동안 떨어지지 않는 샛노란 시선. 아무리 깊이 묻어놓든 몇 겹을 덧씌워 가려놓든 가장 밑바닥까지 파헤칠 것 같기도, 꿰뚫을 것 같기도 한 눈동자. 동시에 가만히, 그저 가만히,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금빛 눈동자…….

결국 사니와는 너털웃음을 흘렸다.

네가 부러 한 게 아니더라도 네 눈은 너무 날카로워. 따갑다 못해 아플 정도야.”

널 아프게 할 셈은 아니었지만, 칭찬으로 들을게.”

뻔뻔한 놈. 오늘도 거기에 있을 게냐?”

들어오라는 허락을 받지 못했는 걸.”

허락을 하면, 순순히 말을 듣기는 하나?”

그런 말투는 조금 그렇네. 난 주인의 말을 잘 듣는 착실한 도검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눈도 하나밖에 없는 마당에 그것마저 못 쓰게 된 모양이구나.”

너무해라.”

찬 복도에 꿇어앉은 남자는 넓은 어깨를 애교스럽게 으쓱였다. 사니와는 손톱달처럼 가늘게 뜬 눈으로 장난스러운 몸짓을 바라보았다.

단 하나였다.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단 한 자루의 도검.

주인의 옷자락 끄트머리만이라도 손에 쥐려 먹이에 몰려드는 잉어처럼 구는 도검들 가운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도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감정을 덮어놓았음에도 쏘아보다시피 하는 눈동자를 차마 숨기지 못하는 도검. 사니와가 그어진 선을 넘을 것을 몇 번이고 허락했음에도 코앞의 선을 넘어오지 않는 도검.

솔직한 건지, 미련한 건지.”

설마 나 말이니? 박한 평가네.”

말이나 해봐라. 뭐가 그리 싫은 게냐? 다른 놈들은 들어오지 못해 안달이건만.”

근시마저도 넘지 못하는 낮디 낮은 벽이다. 그 벽을 물방울을 터뜨리듯 없애버릴 수 있는 권한을 주었는데 손에 쥐려고조차 하지 않는 속셈이 무엇인지 그의 주인은 알 수가 없었다. 샛노란 눈은 그의 감정을 훤히 드러내긴 했으나 안대로 가려진 다른쪽 눈에 그 생각을 꽁꽁 감춰놔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손바닥으로 가리지 못할 궁금증이 마구잡이로 끓어오른 건 결단코 아니었다. 가장 먼저, 사니와는 자신의 도검들에게 궁금증을 품는 일은 얼마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만들지는 않았으나 자신에게서 비롯되었으며, 자신의 명령과 뜻을 충실히 이행한다는 점에서 말그대로 자신의 팔다리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팔다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릇 팔다리란 뇌와 척수가 보내는 신호를, 자아의 말을 듣기 마련이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놈이란. 그가 내어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리를, 혼마루의 주인을 제외한 누구나가 원해 마지않는 허락을 주었는데도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놈이라 함은.

자신의 부속품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말을 듣지 않아 자존심이 꺾이거나, 제 곁을 내주는 아량을 베풀었다고 젠체를 하는 건 아니었다. 혼마루의 주인은 혼마루에 있을 때에야 특별하지만 그의 흘러간 삶은 특별하지도 특출난 것도 아니었기에 꺾일 자존심도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별다른 이유 없이 경련하는 손끝을 본 기분이었다. 그렇담 무어가 문제인지 알 필요가 있었다.

그는 불변의 사실을 안다. 본인조차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니와는 이 혼마루에서, 그가 불러낸 도검들에게는 무엇보다 특별한 존재란 사실을. 그리고 그 특별한 존재가 베푼 특별을 부드럽게 밀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으리란 사실을.

싫진 않아. 그냥 그러고 싶지 않은 거지.”

주인의 명령을 거부할 만큼?”

가볍게 떠보는 물음에 미츠타다의 무거운 시선이 따라붙었다. 하나밖에 없는 눈이 등불 하나 켜지 않은 어슴푸레한 복도 속에서 일순 번뜩였다가, 구름이 달을 가리듯 눈꺼풀 밑으로 감춰졌다.

나에게도 자유의지가 있어.”

갑자기 무기물에서 자아를 가진 존재로서의 각성 발언인가? 자유의지의 발현이 어떤 형태이든 상관은 없다만 업무에 차질이 생기면 얘기는 달라져.”

걱정마. 네 말을 어기거나 곤란하게 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럼 지금이 유일한 항명인 셈이로군.”

엄밀히 따져 미츠타다에게 집무실 안으로 들어오라 명령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주인은 자아를 가진 도검의 속내를 알지 못하더라도 그가 그 명령을 따르지 않을 거란 예측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자신의 앞자리를 가리키며 지금 당장 여기로 오라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할지라도 눈앞의 도검은 곤란하다는 단어 하나만 입에 담을뿐 꿈쩍도 안할 터였다.

사니와는 미츠타다를 더욱 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주인에게 호감을 가졌고, 또 명령은 충실하게 이행하면서 곁에 다가가는 건 싫다는 도검이라니. 고작 문지방을 넘는 게 뭐라고. 그깟게 뭐라고.

넌 이상한 놈이야.”

이왕이면 특별하다고 해주면 좋겠네.”

내 도검들에 다시 없을 놈이지.”

그건…… 반가운 말이네.”

그리 말하는 목소리는 한낮의 볕만큼은 아니지만 새어드는 달빛만큼 밝은 것이었다. 사니와는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 사라진 옅은 미소를 찾아 그의 얼굴을 훑어보았으나 바람에 날아간 연기를 손으로 더듬을 수 없는 게 섭리였다.

사니와의 도검들 중 유일한 것은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며 빙그레 웃어보였다. 미츠타다는 차가운 나무복도 위를 더듬더니 찾던 것을 집어들었다. 흉터가 가득한 맨손에 탐스럽게 피어난 꽃 한 송이가 붙잡혀 있었다.

네가 보고싶어할 것 같아서.”

도검은 그리 말하고 꽃을 바닥에 내려놓더니, 퇴실의 허가를 얻으려는 시늉도 없이 떠나갔다. 사니와는 문지방 위에 덩그러니 놓인 꽃송이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건 나무가 가지를 뻗음과 같았고, 문앞까지 가는 걸음은 흐르는 물과 같았다. 혼마루에 있는 모든 것들의 주인은 거미줄을 쓰다듬 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가는 꽃대를 들어올렸다. 꽃잎 끝은 조금 시들어 있었으나 얼룩 하나 없이 새하얀, 훌륭하리만치 아름다운 꽃봉오리였다. 사니와는 방문을 넘어온 작은 객의 품에 코를 묻고 한껏 숨을 들이마셨다. 한없이 감미로운 기분이었다.

 

 

 

  보  

    

     

눈    

 

 

 

, 탄소, 암모니아, 석회, , 염분, 질산칼륨, , 불소, , 규소, 그 외에 15가지 원소.

그게 그를,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들이다.

영혼이나 생명 같은 불명확하며 계량이 불가능한 요소를 제외하면 26가지. 고작 26가지.

혼마루의 주인이 혼마루에 들어오기 전, 이런 가짓수 적은 물질들로 빚어져 자아를 가진 개체로서 완성되는 요소는 무엇일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철학적인 사고를 즐기는 취미는 없기에 덮어놓았고, 마찬가지로 덮어놓은 의문들과 뒤섞여 무의식 너머로 사라지는 듯 했더랬다. 그러나 풀지 못한 매듭은 어떤 형태로든 다시 돌아오는 법이구나, 하고 그는 새삼 생각했다.

인간이 영적인 요소를 제외한 26가지의 물질로만 이루어졌다고 가정한다면, 그리고 그것들로 인간이 만들어진다면, 개개인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는 의문의 답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임무는 실패했어.”

출진에서 돌아온 근시는 그렇게 말했다.

중상 둘, 경상 셋, 도장 파괴 일곱, 그리고…….”

출진 중 부상을 입는 건 잦지는 않아도 가끔 있는 일이었다. 출진이나 원정 중 도중 귀환도 종종 있는 일이었다. 원인이 뭐든, 어떻게 예방을 하든 아예 일어나지 않는 사고는 없는 법이었다.

그리고…….”

목탄, 옥강, 냉각재, 숫돌.

검을 구성하는 자재이자, 눈앞의 날붙이를 빚어낸 요소. 그가 신을 모시는 자로서 숨결을 불어넣고 의식을 불러일으켰던 매개체. 지금은 한낱 고철이 되어버린 칼날이었던 것.

사니와는 집무실 가운데에 앉아 제 앞에 놓인 것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보다 작은 크기가 된 것은 몇시간 전까지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였다. 집무실 앞의 복도에 앉아 몇 시간이든 개의치 않고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언제나처럼 말없이 떠나버린 도검이었다. 무엇을 보는지 모를 노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그가 있었다는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말끔하게 가버린 도검. 몇년 후에도, 몇십 년 후에도, 그가 죽어 뼈가 되고 흙이 된 후에도 도검들을 이어받은 다른 주인의 집무실 앞에서 차가운 복도를 체온으로 덥힐 거라고 여겼던 도검. 돌아올 때마다 그러 듯, 오늘도 흰 꽃송이를 들고 올 거라고 여겼던…….

꼴사납구나.”

할 말은 가다듬기에 앞서 눈물방울처럼 흘러나왔다.

이렇게 남의 손에 끌려들어 올 거라면 네 자유의지라는 것을 관철했어야지. 철로 만들어진 주제에 그리 쉽게 꺾이면 어쩌자는 거야.”

부러진 날붙이는 대답이 없었다. 내려앉은 흙먼지 사이로 반질반질한 표면이 언뜻 번뜩일뿐이었다. 그는 대답하듯, 혹은 고개를 끄덕이듯 의식적으로 눈을 깜빡였다.

26가지의 재료만으로 똑같은 인간을 다시 만들어낼 수 없다면, 4가지의 재료로 똑같은 도검을 만드는 것 역시 불가능하리라. 설령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가 만들어진다고 할지라도 그건 그의 미츠타다가 아니리라. 미츠타다의 주인은 시도할 생각을 하기에 앞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니와는 짧은 날붙이를 손에 올려봤다. 보기보다 무겁고, 생각보다 차가웠다. 손끝으로 칼날을 쓸어보니 그새 무뎌진 것인지 그은 자리를 따라 살갗이 눌린 자국만 날뿐 베이진 않았다. 도검들의 주인은 인정했다. 그의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는 더 이상 그의 앞마당에 존재하지 않았다. 답지 않게 남기고 간 흔적만 물자국처럼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서늘한 날붙이를 제 눈높이까지 들어올리고 눈을 감았다. 이게 미츠타다의 몸이라면, 이왕이면 머리이길 바랐다. 그래야 이 입맞춤이 입맞춤이 될 테니까.

 

 

 

 

누구 없느냐.”

대답은 곧장 들려왔다. 사니와는 자신의 도검이 무슨 명령이든 충실히 수행할 것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는 장지문 너머에서 주인의 말을 기다리는 근시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다음번 출진 때 내다버리고 오거라.”

문지방에 소리없이 내려놓은 건 단검보다 짧아진 날붙이였다. 근시는 별다른 말을 얹지는 않았으나 당혹을 감추지 못하는 낯이었다. 사니와가 기억하는 게 옳다면 지금 근시는 미츠타다가 마지막으로 출진했을 때 같은 부대에 편성되어 있던 도검이었다. 부러진 검을 건네던 부대장 뒤에 서서 뒤집어 쓴 핏자국보다 붉은 코를 훌쩍이던 모습을 기억했다.

사니와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감정으로 흠뻑 젖은 얼굴을 바라보다가, 넌지시 물었다.

오늘 달이 떴느냐.”

근시는 뜬금없는 물음에 또 다시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착실하게 대답했다.

으응, 무척 밝은 보름달이야.”

그러니 됐다.”

근시는 길을 잃은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무슨 뜻인지 물어볼지 말지를 가늠해보는 듯 했다. 그러나 사니와는 더 이상 얹을 말을 찾지 못했기에 손짓으로 근시를 자리에서 물렸다. 근시는 불안한 낯으로 몇 차례 힐끔거리며 뒤를 돌아보더니, 그대로 어두운 복도 속으로 사라졌다.

도검들의 주인은 자그마한 빛 하나 들지 않는 복도에 시선 한번 주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높이에 있는 선반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내든 그는 집무실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장지문을 열자 빗줄기 같은 달빛이 방안으로 쏟아져내렸다. 사니와는 눈을 감고 쏟아지는 달빛을 맞았다. 감은 눈꺼풀의 너머가 금빛으로 어질어질 빛났다.

한참 후에야 뭍에 나온 고래처럼 깊은 숨을 내쉰 사니와는 제 옆자리에 내려놓은 유리병의 뚜껑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투명한 유리병의 표면이 달빛을 받아 반들반들 빛났다. 사니와는 몸을 웅크려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말린 꽃들이 그의 시선을 따라 사박사박 흔들렸다. 어깨 위로 흘러내리는 달빛을 맞으며 눈을 감으면, 생생하던 꽃의 향기마저 코끝을 맴도는 듯 했다.

미츠타다가 꺾인 후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그 어떤 도검들도 사니와의 집무실로 발을 들이지 못했고,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사니와를 사랑하고 추종했다.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의 파괴가 그들에게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켰는지는 몰라도 도검들은 자신들의 임무와 역할에 조금 더 충실해졌다. 사니와는 그 사실 자체에 만족했기에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또한 사니와는 어느 때든 맡은 바 소임에 충실했기 때문에 새로운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가 현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니와는 새로운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의 기량을 한껏 끌어올려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는 금방 제2부대에 속하게 되었다.

그 외엔 한결같은 삶을 걸었다. 유리병 안의 꽃더미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지구는 우주를 유영하며 제자리를 도는 것처럼. 누군가가 사라진 후에도 지구는 변함없이 도는 것처럼.

그러나 그는 가끔 시간을 내서 달빛을 쬐었다. 그리곤 꽃과 달빛으로 가득 채운 유리병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름다운 것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아름답기에, 언제까지고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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