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mble Tumble Bramble

[FGO] midnight blue 본문

FATE

[FGO] midnight blue

메이포플러 2019.05.03 16:32

190503 빌리 더 키드


* 칼데아 마스터 설정. 이름 안 나옴.

* 13~4장 사이 즈음.


* , 네 눈을 보기 전부터 이미 널 사랑한 기분이 들어.



 

midnight blue

 

 

빌리는 공교로운 우연과 맞닥뜨렸다. 옴싹달싹 하지 않는 두 다리로 단단하게 서서 멀지 않은 복도 끄트머리를 바라보았다. 생전과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좋아진 시력은 그 끝에 있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의 마스터가 복도의 창틀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혼자 있는 마스터라니, 드문 일이네. 빌리는 무던하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그가 아는 마스터는 언제나 사람들──직원, 혹은 서번트들에게 둘러싸여있곤 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사람으로 이루어진 울타리의 한 가운데에 덩그러니. 빌리는 마스터와 주변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거리가 퍼스널스페이스를 존중한다는 함의일지, 아니면 마스터와 그들 사이에 놓인 간격의 형상화일지 가끔 생각했다. 그게 어느 쪽에 의해 만들어졌을지 또한.

그렇기 때문인지 마스터가 혼자 있는 광경은 눈에 익진 않았더라도 이상하게 보이진 않았다. 그녀는 평온한 낯이었고, 버터나이프로 감정과 뭔지 모를 무언가를 뚝 잘라 덜어낸 것처럼 보였다. 차라리 깔끔하다고도 할 수 있는 모양새였다. 산자와 죽은자가 뒤엉켜있는 건물 내에서, 그러나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그녀는 흘러갈 때를 놓친 시간처럼 그 자리에 고여있었다. 번뜩거리는 유리창을 등에 두른 채 말간 낯으로, 그저 가만히.

물기 하나 없는 낯짝은 멀리서도 죽음의 냄새를 풍겼기에 빌리는 관속에 우겨넣어진 시신을 내려다보는 심정으로 그녀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죽은 자가 산 자의 등을 밀어준다는 건 완전히 헛소리거나 개소리다.

야아, 마스터.”

빌리는 오랜 친구를 만나기라도 한 마냥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둘은 결코 오래된 친구 사이가 아니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이런 데에서 뭐하고 있어?”

복도를 가로지른 그는 창틀에 엉덩이를 붙였다. 카우보이 부츠에 달린 톱니바퀴가 조그맣게 잘각거렸다. 마스터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놀란 걸까? 빌리가 말을 건 게 의외였을지도 모른다. 그와 마스터는 전무全無라고 해도 될만큼 접점이 없었다. 빌리는 누구와는 달리 시끌벅적한 자리에 굳이 비집고 들어가는 취미는 없었고, 마스터의 주변은 대체로 소란스러웠으니 둘 사이에 교집합은 없었다. 둘 중 어느쪽이 상대방을 먼저 찾아가지 않는 이상.

그리고 그 순간이 지금 도래했다.

놀란 낯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전투용 슈트를 맵시 있게 차려입고 단단하게 굳은 채, 한껏 긴장된 분위기를 풍기는 평소와는 딴판이었다. 그 탓인지 얼핏 보면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가 짊어진 무게를 내려놓는 순간에는 언제나 이런 표정일까?

……내가 방해한 거려나? 그렇담 미안해.”

빌리는 입술을 축이며 무던한 사과를 건넸다. 손끝이 제멋대로 움칠댔는데, 그는 이 무의식적인 신체반응이 슬쩍 고개를 처든 욕구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다.

아니, 괜찮아.”

그의 마스터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감정의 편린 하나 느껴지지 않는 말끔한 태도. 손끝이 다시 움찔댔다. 눈앞에 드리운 베일을 걷어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는 굳이 욕망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와 그의 마스터, 둘을 합친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두터운 유리창 너머에 겨울이 도사리고 있었다. 시도때도 없이 나리는 눈발은 얼어붙은 골짜기에서 울부짖는 소리를 내기 마련인데 오늘은 드물게 맑았다. 위로는 밤하늘이 있고, 아래로는 새하얀 설원이 있었다. 빌리는 먼 하늘 아래에서 불타고 있을 폐허를 생각했다. 동시에 설원 밑에 잠들었을 인류를 생각했다. 그것의 또 다른 이름은 종말이었고, 그것을 읽으면 코앞으로 다가온 멸망이었다. 그럼에도 인간은 어떤 참혹함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게 만들어진 법이라.

멋진걸. 눈 구경을 하는 거야? 아니면 별 구경?”

굳이 따지자면 별 구경인데…… 그냥 바람을 쐬고 싶어서.”

그거 이상하지 않아? 여긴 바람 한 점 안 불잖아.”

그렇긴 하지만. 바깥에 나가는 건 좀.”

허가가 안 나온다든가?”

멀리까지 가지 않으면 잠깐 나가는 건 괜찮아. 다른 사람하고 같이 나간다면.”

아하. 빌리는 깨달음을 삼켰다. 세계 최후의 구제기관은 그들의 구세주를 제법 귀하게 여기는 모양이었다. 당사자가 자신을 목줄을 찬 개처럼 여기게 만드는 걸 보면.

그리고 바깥은 추워서 싫어.”

아님 단순히 마지막 희망이 감기에 걸리지 않게 하려는 걸 수도 있고.

빌리는 팔짱을 끼고 창문에 등을 기댔다. 옷 너머의 냉기가 등줄기를 타고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춥지 않으면.”

?”

춥지 않으면 나가고 싶어?”

의사를 묻는 것에서 그치는 단순한 물음이 아니었다. 빌리는 영원한 겨울 앞에서 그리 말했다. 인리수복을 해내야만 녹아내릴 얼어붙은 땅에서.

침묵이 둘 사이를 가로질렀다. 빌리는 자신이 마스터의 마음에 걸린 자물쇠를 본의 아니게 쏘아맞춘게 아닌가 잠시 생각했다. 연약한 걸 대하는 건 영 어려웠다. 부드러운 건 더 어려웠고. 연약하고 부드러운 건 무엇보다도 어려웠다. 그러나 그가 마스터에게 무언가 해줄 수 있다면 그건 어색한 위로가 아니라 마스터의 앞을 가로막는 이들을 쏴죽이는 것이었다.

마스터가 파묻어둔 걸 그가 파헤쳐냈다면 미안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그는 무법자였고, 무법자는 노크를 하기보다 문을 걷어차고 흙발로 쳐들어가는 짓을 곧잘 하는 법이었다.

마스터는 입술을 어물대다가서번트가 되어 불편한 점 중 하나는 이런 쓰잘데기 없는 제스처까지 다 보인다는 것이다. 심지어 쳐다보지 않는데도!말했다.

……빌리는 어때? 나가고 싶어?”

글쎄, 어떨 것 같아?”

마스터는 퍽 곤란하다는 낯이었다. 빌리는 그녀의 표정에서, 말에서 그녀가 미처 숨기지 못한 감정을 읽어냈다. 그녀는 빌리에게 미안한 모양이었다. 부채감이 있고, 자책도 조금 있었다. 어쩌면 빌리를 칼데아에 가둬놓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실제와 별반 다르지 않을 터였다. 빌리는 철창 없는 우리에 목줄이 매인 채 갇혀있었다.

나가고 싶냐고? 무법자에게 욕망을 묻는가? 그런 무의미한 질문을 하는가?

그야 나가고 싶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지. 태양을 맞고, 바람에 젖고, 초연과 모래먼지가 섞인 공기를 게걸스럽게 삼키고 싶지. 당장이라도 말에 올라타서 작열하는 모래밭을 달리며 뜨거운 공기로 목을 축이고 싶지. 지긋지긋한 먼지구덩이를 그리워하게 될 거라고 감히 상상이나 했겠어?

하지만 그건 마스터도 크게 다르지 않아.

빌리는 마스터의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세 획의 령주가 붉은 꽃처럼 선명하다. 저게 목줄이라면. 저것보다 거대한 악의와 선의로 포장된 대의가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다면, 빌리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그녀의 목줄을 쥔 자의 미간에 총알을 박아넣는 것. 그것의 숨통을 끊어내는 것. 번개처럼 내달려서 모든 것을 파괴하고, 폭풍처럼 몰아쳐서 모든 것을 쓸어내는 것. 그게 서번트로서의 의무이자 무법자로서의 욕구였다.

지금은 잠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마스터가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아 무용한 상태인 한. 아주 짧을 그 시간 동안 그가 걷지 않은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주위를 둘러보기도 하는 거다. 한 평생을 불꽃처럼 살았으니.

으음, 지금은 마스터를 돕는 입장이니까, 조금은 자제해보려는 거지.”

그건…… 고맙네.”

아하하, 말로만?”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 말은 고맙지만 마스터는 나에게 줄 수 있는 게 없을 걸?”

시원스럽다 못해 차가운 단언이었다. 빌리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마스터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긍정이었다.

가능한 빨리 빌리가 밖에 나갈 수 있게 해볼게.”

그러곤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빌리 역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변함없이 아름다운 무덤이 그 자리에 있었다.

세계 최후의 마스터는 어딜 바라보는 걸까?

고마운 말이지만 난 누가 해주길 기다리는 것보단 내가 직접 하는 쪽이 좋더라.”

그건…… 고려해볼게.”

거짓말이지?”

어렵겠지만.”

그것 봐.”

레이시프트를 하는 이들은 극히 한정적이다. 편성이 바뀌지 않고, 대체로 이름만 들으면 누군지 아는 대영웅에, 초반부터 여로를 함께 해온 이들. 출신도 합류도 어중간한 빌리가 그 사이에 끼어드는 건 어려운 일일 테다. 인리수복을 서두르는 마스터에게는 다른 인선을 고른다는 선택지조차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빌리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마스터와 나란히 조바심을 내기보단 그녀의 등을 밀어주기로 했다. 죽은 자로서, 산 자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볼 수 있도록. 앞서 한 말이 있지만 알 바 아니었다. 무법자란 친구였다가도 뒤돌면 적이 되는 만큼 태세전환도 빠른 법이었다.

그러면 하루빨리 인리수복을 끝내는 수밖에 없겠는 걸. 나는 빨리 나가고 싶고, 마스터도 나가려면 저 빌어먹을 겨울이 끝나야 하니까.”

, 열심히 할게.”

? 마스터 혼자 힘낼 필요는 없잖아? 좀 더 다른 사람들을 의지하는 건 어때? 혼자 싸우는 것도 아니고 머릿수가 많은 점은 이용하지 않으면 손해라고. 금붙이 따위를 두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이건 세상을 뺏고 빼앗는 싸움이잖아.”

나는 미래가 달린 싸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거나 그거나. 이긴 쪽이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거잖아. 약육강식, 나 그런거 싫지 않아.”

마스터는 당황해할지 웃을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빌리는 어쩐지 마음이 들뜨는 것을 느꼈다.

인리수복이 끝나면 나랑 같이 나갈래?”

?”

난 밖에 나가고 싶고, 마스터도 밖에 나가고 싶으니까. 인리수복이 끝났을 때가 딱 좋은 타이밍이잖아?”

? 그래도 괜찮아?”

마스터는 괜찮아?”

나는 좋아.”

그럼 예약해놓은 거야. 잊으면 안 돼. 마스터의 첫 외출 동반자는 나라는 거. 에스코트 제대로 할 자신 있으니까 기대해둬.”

빌리는 명쾌한 웃음을 띄었다. 둥글게 휜 눈꼬리를 따라가듯 마스터 역시 웃었다. 빌리는 그제야 마스터와 제대로 마주본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눈이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운이 좋았네. 유익한 대화였어.”

나도 빌리랑 만나서 좋았어. 왜 지금까지 제대로 얘기해본 적이 없었을까.”

뭐어, 마스터는 공사다망하잖아.”

그거…… 비꼬는 거야?”

마스터가 얼굴을 조금 붉힌 채 되물었다. 그의 말에 마스터가 떠올렸을 사람이 누구일지 눈에 선했다. 마스터 역시 빌리와 자신이 떠올린 사람이 같다는 것을 아는 눈치였다. 그러고보니 마스터는 짙은 녹색 담요를 덮고 있었다. 징글징글한걸.

설마.”

빌리는 물샐 틈도 없는 완벽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래서 어때?”

뭐가?”

나가고 싶어?”

빌리는 마스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감정을 덜어낸 것 같은 말간 낯, 혈색이 살아난 뺨을. 물결처럼 일렁이는 짙은 눈동자를. 그는 베일 너머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나가고 싶어. 살아있는 것들을 보고싶어.”

단단히 맺어진 말은 제법 굳건했다. 빌리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웃음이었다.

그럼 마스터가 날 필요로 하는 한, 있는 힘껏 도와줄게. 아는지 모르겠는데, 나 지지않을 자신은 있거든.”

그 때, 빌리는 그의 마스터의 눈동자 속에서 빛나는 별을 보았다

공유하기 링크
0 Comments
댓글쓰기 폼